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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애하는 도적님아 홍길동 모티브 분석, 조선시대 의적 문화와 민중 저항의 역사

KBS 드라마 '은애하는 도적님아'의 여주인공 홍은조는 '길동'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이 설정은 조선시대 실존 인물 홍길동과 고전소설 '홍길동전'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드라마를 통해 조선시대 의적 문화와 민중 저항의 역사를 살펴본다.


2026년 1월 첫 방송을 시작한 KBS 드라마 '은애하는 도적님아'가 화제다. 남지현이 연기하는 여주인공 홍은조는 낮에는 혜민서의 의녀로, 밤에는 탐관오리의 재물을 훔쳐 백성을 돕는 도적으로 이중생활을 한다. 극중에서 그녀는 '길동'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데, 이는 '길 위의 동무'라는 의미와 함께 조선시대 대표적인 의적 홍길동을 떠올리게 하는 장치다.

재미있는 사실은 홍은조의 아버지 역을 맡은 김석훈이 1998년 드라마 '홍길동'에서 타이틀 롤을 연기했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제작진이 의도적으로 홍길동 서사를 계승하고자 한 흔적이다. 그렇다면 홍길동은 누구이며, 왜 400년이 넘도록 한국인의 기억 속에 살아있는 걸까?

실존 인물 홍길동, 의적인가 도적인가

홍길동은 실존 인물이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1500년(연산군 6년) 10월 22일, 영의정 한치형과 좌의정 성준, 우의정 이극균이 도적 홍길동(洪吉同)의 체포 사실을 임금에게 보고했다. 당시 홍길동은 자신의 형 홍일동이 입던 당상관 복장을 입고 관리 행세를 하며 도적질을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흥미로운 점은 홍길동이 체포될 당시 최소 75세 이상의 노인이었다는 사실이다. 그의 부친 홍상직이 1424년에 사망했으므로, 홍길동은 1425년 이전 출생자여야 한다. 소설 속 젊고 혈기 넘치는 홍길동과 달리, 실제 홍길동은 노년에 도적 생활을 했던 것이다.

실록에는 홍길동이 의적이었다는 기록이 없다. 오히려 충청도 지역에서 홍길동의 도적질로 유망민이 증가하고 세금을 거두기 어려워졌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관아뿐 아니라 일반 백성들도 그의 약탈로 피해를 입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왜 홍길동은 의적으로 기억되는 걸까?

소설 '홍길동전'이 만든 의적 이미지

현재 우리가 아는 의적 홍길동은 고전소설 '홍길동전'에서 창조된 인물이다. 오랫동안 허균(1569-1618)이 지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최근 학계에서는 이에 대한 논란이 있다. 연세대 이윤석 교수는 '홍길동전'이 19세기 무명의 서민 작가가 쓴 한글소설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주장한다.

소설 속 홍길동은 좌의정 홍문과 시비 춘섬 사이에서 태어난 서얼이다. 재주가 뛰어나지만 '호부호형'을 하지 못하는 신분 차별에 좌절한 그는 집을 떠나 활빈당을 조직한다. 활빈당은 탐관오리를 징벌하고 빼앗은 재물을 가난한 백성에게 나눠주는 의적 조직이다. 결국 홍길동은 병조판서 벼슬을 받고 조선을 떠나 율도국의 왕이 된다.

이 이야기는 조선시대 신분제의 모순, 서얼 차별, 탐관오리의 횡포 같은 사회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따르면 '홍길동전'은 "적서 차별 등의 신분적 불평등을 내포한 중세 사회는 마땅히 개혁되어야 한다는 주제 의식"을 담고 있으며, 진보적 역사의식을 드러낸다.

조선 3대 도적과 민중 저항의 역사

조선시대 실학자 성호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홍길동, 임꺽정, 장길산을 '조선의 3대 도적'으로 꼽았다. 이들은 각각 연산군(홍길동), 명종(임꺽정), 숙종(장길산) 시대에 활동했으며, 모두 실존 인물이다.

임꺽정은 백정 출신으로 황해도를 중심으로 3년간 활동했다. 명종실록의 사관은 "국가에 선정이 없고 교화가 밝혀지지 않아 재상들의 횡포와 수령들의 포학이 백성들의 살과 뼈를 깎고 기름과 피를 말려 손발을 둘 곳이 없고 호소할 곳도 없어 도적이 되었다면, 도적이 된 원인은 정치를 잘못하였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장길산은 광대 출신으로 평안도와 함경도 일대에서 활동했다. 숙종은 "극적(큰 도둑) 장길산은 몹시 사나워 여러 도를 왕래하면서 도당을 많이 모으고 있다. 이미 10년이 경과했는데도 잡지 못했다"며 각 관찰사에게 엄명을 내렸지만, 장길산은 끝내 잡히지 않았다.

실록에는 이들이 의적이었다는 기록이 없다. 오히려 약탈, 살인, 방화 등 범죄 행위가 기록되어 있다. 그럼에도 이들이 의적으로 기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의적은 민중이 만든 저항의 상징

영남대학교 박홍규 교수는 저서 '의적 정의를 훔치다'에서 "이 사람들이 설사 실제로는 의롭지 않았을지라도 백성은 이 사람들을 이용해 부정한 체제를 향한 저항을 꿈꾸었기에 의적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생명력을 얻을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특히 홍길동이 활동한 연산군 시대는 조선 역사상 최악의 폭정 시기였다. 갑자사화와 을사사화로 수많은 사람이 희생되고, 탐관오리의 횡포가 극에 달했다. 이런 상황에서 홍길동은 민중의 분노와 저항 의지를 투영하기에 적합한 인물이었다.

성호 이익은 홍길동에 대해 "옛날부터 황해도와 평안도에는 큰 도둑이 많았다. 그중에 홍길동이란 자가 있었는데, 오래전이라서 어떻게 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지금까지 장사꾼들이 맹세하는 말에 들어 있다"고 기록했다. 18세기에도 상인들이 홍길동의 이름을 걸고 맹세할 정도로 그의 명성은 오래 지속되었다.

드라마 '은애하는 도적님아'가 재해석하는 의적 서사

'은애하는 도적님아'는 홍길동 서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다. 여성 주인공 홍은조가 의녀이면서 도적이 되어야 했던 이유는 조선시대 여성의 제약된 사회 참여 때문이다. 의녀는 의료 행위를 할 수 있었지만 신분은 낮았고, 여성이 공적으로 정의를 실현할 방법은 거의 없었다.

드라마는 홍은조가 탐관오리의 곳간을 털어 백성을 구제하는 과정을 통해, 법이 정의를 보장하지 못할 때 개인의 저항이 정당화될 수 있는지 질문을 던진다. 이는 400년 전 홍길동전이 던졌던 질문과 같다.

남지현은 낮에는 따뜻한 미소로 환자를 돌보다가 밤에는 단호한 눈빛으로 악을 응징하는 이중생활을 섬세하게 연기한다. 백일의 낭군님 이후 8년 만의 사극 복귀작인 만큼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의적 이야기는 시대를 초월한다. 홍길동, 임꺽정, 장길산이 살았던 조선시대나 2026년 한국이나, 부정한 권력에 저항하고 약자를 보호하려는 열망은 여전히 존재한다. 다만 실제 역사 속 이들은 의적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들을 의적으로 만든 것은 고통받는 민중의 염원이었다.

'은애하는 도적님아'의 홍은조는 21세기 시청자에게 묻는다. 법이 정의를 보장하지 못할 때, 개인의 저항은 정당한가? 약자를 돕기 위한 불법은 용서받을 수 있는가? 이 질문에 쉽게 답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의적 이야기가 살아남는 한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불의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당신은 홍은조 같은 인물이 필요한 사회에 살고 싶은가, 아니면 그런 인물이 필요 없는 정의로운 사회에 살고 싶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