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드라마 '은중과 상연'이 단순한 우정 서사를 넘어 한국 사회에 뜨거운 화두를 던졌습니다. 바로 **조력사망(assisted suicide)**이라는 무거운 주제입니다. 말기 암 판정을 받은 천상연(박지현)이 류은중(김고은)에게 스위스로의 마지막 여정에 동행해달라고 부탁하는 장면은 많은 시청자들에게 충격과 함께 깊은 성찰을 안겨주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은중과 상연'이 제기한 조력사망의 윤리적 쟁점과 한국 사회의 존엄사 논의, 그리고 드라마가 던지는 본질적 질문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드라마 속 조력사망, 어떻게 그려졌나
상연의 선택 - 고통 없는 죽음에 대한 갈망
'은중과 상연' 15부작 중 후반부는 상연의 시한부 인생과 조력사망 결정 과정에 집중합니다. 드라마는 상연이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를 섬세하게 묘사합니다. 단순히 병의 고통을 피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결정하고 싶다는 인간의 자율성에 대한 갈망이었습니다.
상연은 은중에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나로 남고 싶다"고 말합니다. 이는 조력사망을 선택하는 많은 이들의 핵심 심리를 대변합니다. 병원 침대에서 통제력을 잃고 무력하게 죽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존엄을 지키며 삶을 마무리하고 싶다는 것이죠.
은중의 갈등 - 남겨질 사람의 고통
드라마는 조력사망을 결정한 당사자뿐 아니라 남겨질 사람의 심리적 고통도 놓치지 않습니다. 은중은 처음 상연의 부탁을 거절합니다. 친구의 죽음을 지켜봐야 한다는 두려움과 "내가 동행하는 것이 친구의 죽음을 돕는 것 아닌가"라는 죄책감 때문입니다.
하지만 결국 은중은 동행을 결심합니다. 그 과정에서 드라마는 질문을 던집니다. 진정한 사랑은 상대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일까, 아니면 끝까지 생명을 지키려 노력하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시청자 각자의 몫으로 남겨둡니다.
한국의 존엄사 법적 현황과 조력사망의 차이
연명의료결정법 vs 조력사망
많은 사람들이 '존엄사'와 '조력사망'을 혼동하지만, 법적·윤리적으로 명확한 차이가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2018년부터 **연명의료결정법(웰다잉법)**이 시행되고 있습니다. 이는 회생 가능성이 없는 말기 환자가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는 법입니다. 쉽게 말해 인공호흡기나 심폐소생술 같은 연명치료를 중단하여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하는 '소극적 안락사'에 해당합니다.
반면 **조력사망(physician-assisted suicide)**은 의사가 처방한 약물을 환자 스스로 복용해 생을 마감하는 '적극적 안락사'입니다. 한국에서는 현재 불법이며, 형법상 자살방조죄나 살인죄로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왜 상연은 스위스로 갔을까
드라마 속 상연이 스위스로 간 이유는 명확합니다. 스위스는 전 세계에서 외국인에게도 조력사망을 허용하는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스위스의 디그니타스(Dignitas)나 엑시트(Exit) 같은 단체는 엄격한 심사 절차를 거쳐 조력사망을 지원합니다. 환자는 정신적으로 온전한 상태에서 여러 차례 의사를 확인받아야 하며, 최소 두 명 이상의 의사로부터 시한부 진단을 받아야 합니다. 이 모든 과정은 본인의 자발적 의사를 확인하기 위함입니다.
조력사망을 둘러싼 윤리적 논쟁
찬성 입장 - 자기결정권과 존엄
조력사망 찬성론자들은 생명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핵심 근거로 듭니다. 인간은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살지 선택할 권리가 있듯이, 어떻게 죽을지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말기 암 환자처럼 극심한 고통 속에서 죽음을 기다려야 하는 경우, 통증 관리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신체적·정신적 고통이 존재합니다. 이때 조력사망은 불필요한 고통을 줄이고 존엄을 지키는 인도적 선택이 될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반대 입장 - 생명의 신성함과 오남용 우려
반대론자들은 생명의 절대적 가치를 강조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의 생명은 보호받아야 하며, 의료진이 죽음을 돕는 것은 의료 윤리에 위배된다는 입장입니다.
또한 조력사망이 합법화될 경우 사회적 약자에 대한 압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됩니다. 경제적 어려움이나 가족에게 짐이 된다는 죄책감 때문에 조력사망을 선택하도록 간접적으로 강요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네덜란드나 벨기에에서는 우울증 환자나 고령자의 조력사망이 늘어나면서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은중과 상연'이 던지는 질문
드라마는 조력사망의 찬반을 명확히 정리하지 않습니다. 대신 시청자들에게 스스로 생각해볼 질문을 남깁니다.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당신의 소중한 사람이 같은 부탁을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은중과 상연'의 마지막 장면은 많은 이들에게 눈물을 자아냈습니다. 은중은 상연의 곁에서 끝까지 함께하며 친구가 평화롭게 생을 마감하도록 돕습니다. 그 과정에서 두 사람은 30년간 쌓였던 오해와 상처를 풀고 진심으로 화해합니다.
드라마가 보여준 것은 단순히 죽음이 아니라 '잘 보내는 것'의 의미입니다. 우리 사회는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조차 터부시하지만, 드라마는 죽음도 삶의 일부이며 준비하고 받아들여야 할 과정임을 섬세하게 담아냈습니다.
결론 - 죽음의 존엄을 생각하다
'은중과 상연'은 한국 드라마 역사상 조력사망이라는 민감한 주제를 정면으로 다룬 거의 최초의 작품입니다. 15부작이라는 긴 호흡을 통해 인물의 심리와 갈등을 깊이 있게 그려내며, 단순한 논란이 아닌 진정한 성찰의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조력사망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쉽지 않습니다. 생명 윤리, 종교, 문화, 법적 테두리가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던진 질문만큼은 명확합니다.
"우리는 죽음을 어떻게 준비하고, 받아들일 것인가?"
"진정한 존엄이란 무엇인가?"
이제 이 질문은 우리의 몫입니다. 여러분은 '은중과 상연'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조력사망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을 댓글로 나눠주세요.
※ 이 글은 드라마 '은중과 상연'을 바탕으로 한 사회적 논의를 위한 분석 콘텐츠입니다. 조력사망은 현재 한국에서 불법이며, 이 글은 특정 입장을 옹호하거나 권장하지 않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