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과 18범의 건달이 무고한 시민을 폭행해 사망에 이르게 했지만, 받은 형량은 고작 3년 6개월. 12년 뒤 출소한 그는 여전히 폭력을 일삼고 있었고, 어린 시절 어머니를 잃은 한 청년은 결심합니다. "법이 처벌하지 않는다면, 내가 직접 처벌하겠다." 디즈니+ 드라마 '비질란테'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2023년 11월 디즈니+를 통해 공개된 '비질란테'는 남주혁, 유지태, 이준혁 등 화려한 캐스팅과 빠른 전개로 화제를 모았습니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진짜 주목받은 이유는 다른 곳에 있습니다. 바로 한국 사법 시스템의 가장 민감한 문제, '솜방망이 처벌'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낮에는 모범적인 경찰대 학생, 밤에는 법망을 피한 범죄자들을 직접 응징하는 비질란테로 살아가는 김지용의 이야기는 단순한 액션 스릴러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형사사법 시스템에 대한 강렬한 비판이자 질문입니다.
비질란테의 탄생: 3년 6개월이라는 불합리
드라마의 첫 장면은 충격적입니다. 어린 김지용은 횡단보도에서 우연히 부딪친 전과 18범 건달에게 어머니가 폭행당하는 모습을 목격합니다. 어머니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내상이 터져 결국 사망하죠. 가해자는 재판을 받았지만, 법원은 "살해 의도가 없었던 점, 일정 금액을 공탁하여 합의를 시도한 점, 저지능과 정신질환으로 치료받고 있는 점, 범행을 깊이 반성하고 뉘우치는 점"을 참작해 고작 3년 6개월의 형량을 선고합니다.
12년 뒤, 경찰대 학생이 된 김지용은 출소한 가해자를 추적합니다. 그리고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하죠. 재판 과정에서 "깊이 반성한다"던 그 건달은 여전히 반성은커녕 더욱 패악무도해져 있었습니다. 예전에 자신을 신고한 버스 기사를 찾아가 얼굴을 피떡이 될 때까지 때렸고, 여전히 폭력을 일삼고 있었습니다. 김지용은 그날 밤, 비질란테로 각성합니다.
이 설정은 픽션이 아닙니다. 원작 웹툰 작가 김규삼은 실제 한국 사회에서 벌어진 여러 사건들을 모티브로 이 이야기를 만들었습니다. 심신미약, 반성문, 합의금 공탁 등의 이유로 경미한 처벌을 받고 재범하는 사례들, 피해자는 죽거나 평생 고통받지만 가해자는 몇 년 만에 출소해 일상으로 돌아가는 현실이 바로 비질란테 탄생의 배경입니다.
한국 형사사법의 고질적 문제: 심신미약과 주취감경
비질란테가 비판하는 한국 형사사법 시스템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심신미약 감경' 제도입니다. 형법 제10조 2항은 "심신장애로 인하여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자의 행위는 형을 감경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조항이 악용되어 왔다는 점입니다. 2018년 법 개정 이전까지는 심신미약이 인정되면 "반드시" 형을 감경해야 했습니다. 사형은 무기징역으로, 무기징역은 7년 이상의 징역으로, 유기징역은 절반으로 감형되었죠.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범행 당시 심신미약 상태였다"는 진단서 하나로 형량이 반토막 나는 일이 반복됐습니다.
특히 논란이 된 것은 '주취감경'입니다. 술에 취한 상태에서 범죄를 저질렀다는 이유로 형을 감경받는 관행이었죠. 2008년 조두순 사건이 대표적입니다. 만취 상태에서 8세 여아를 성폭행해 평생 장애를 안긴 조두순은 심신미약을 인정받아 무기징역 대신 12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국민적 분노가 폭발했고, 이후 성폭력 범죄에 대해서는 주취감경을 적용하지 않도록 법이 개정됐습니다.
하지만 다른 범죄에서는 여전히 주취감경이 적용됩니다.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치어 죽이고도, 술에 취해 폭행하고도, "술을 마신 상태"라는 이유로 형이 줄어드는 일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법원 판례를 보면 음주운전 역주행으로 2명 이상 사망자가 발생한 사건에도 대부분 징역 10년 미만의 형량이 선고됩니다. 법정 최고형은 무기징역이지만, 실제 양형은 그에 훨씬 못 미치는 것이죠.
범죄 피해자는 어디에 있는가
비질란테가 더 날카롭게 지적하는 문제는 '범죄 피해자의 부재'입니다. 한국의 형사사법 시스템은 가해자의 권리와 교화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지만, 정작 피해자와 유족의 고통은 제대로 고려되지 않습니다.
드라마에서 김지용이 응징하는 범죄자들을 살펴보면 그 문제가 명확히 드러납니다. 음주운전으로 23세 청년을 치어 죽이고도 후진해서 다시 깔아뭉갠 트럭 기사는 금고 1년 2개월을 선고받습니다. 검사는 살인으로 기소했지만 법원은 과실치사를 인정했죠. 이는 실제 2018년 발생한 트럭 후진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한 것입니다. 검사가 무기징역을 구형했지만 법원은 금고 1년형만 선고했던 사건 말입니다.
아동 성폭행범 정덕흥 역시 솜방망이 처벌을 받고 출소한 뒤, 피해자를 찾아가 "이게 다 너 때문"이라며 흉기를 휘두르려 합니다. 피해자는 평생 트라우마에 시달리지만, 가해자는 몇 년 만에 출소해 피해자를 다시 위협하는 것입니다. 드라마는 이런 현실을 통해 묻습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법인가?"
한국의 형사소송법은 피해자를 '증인'으로만 취급합니다. 재판의 주체는 국가(검사)와 피고인이며, 피해자는 그저 사건을 증언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피해자는 가해자에게 어떤 형량이 선고되는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합의금을 받으면 다행이지만, 합의하지 않아도 가해자는 "합의를 시도했다"는 이유로 감형받을 수 있습니다.
법정 최고형과 실제 양형의 괴리
비질란테는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를 지적합니다. 바로 '법정 최고형과 실제 양형의 괴리'입니다. 법률에는 무기징역, 사형 같은 무거운 형량이 명시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거의 적용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망사고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최고 무기징역까지 선고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판례를 보면 대부분 징역 5년에서 10년 사이의 형량이 선고됩니다. 2명 이상 사망했어도 마찬가지입니다. 법정 최고형의 존재 이유가 무색해지는 순간입니다.
강력범죄도 마찬가지입니다. 강도살인은 사형, 무기징역 또는 10년 이상 징역에 처할 수 있지만, 실제로 사형이 선고되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무기징역도 20년 만에 가석방되는 경우가 많아 '종신형'이 아닌 '장기형'에 가깝습니다.
이런 괴리가 발생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첫째, 법원이 가해자의 교화 가능성과 재활을 중시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양형기준이 법정 최고형보다 훨씬 낮게 설정되어 있습니다. 셋째, 심신미약 같은 감경 사유가 중첩 적용되면서 형량이 계속 줄어듭니다. 그 결과 피해자와 국민은 "법이 범죄자 편을 든다"고 느끼게 됩니다.
2018년 법 개정, 그리고 여전한 한계
국민적 분노가 누적되면서 2018년 12월, 형법이 개정됩니다. 일명 '김성수법'이라 불리는 이 개정안은 심신미약을 '필수적 감경 사유'에서 '임의적 감경 사유'로 변경했습니다. 심신미약이 인정되더라도 판사가 감경의 필요성이 없다고 판단하면 감경하지 않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는 2018년 서울 강서구 PC방 살인 사건이 계기가 됐습니다. 조현병을 앓던 남성이 PC방에서 아르바이트생을 살해한 사건에서, 1심은 심신미약을 인정해 무기징역 대신 징역 30년을 선고했습니다. 국민적 분노가 일었고, 결국 법이 개정된 것이죠.
법 개정 이후 실제로 심신미약이 인정되더라도 감경하지 않는 판결이 늘어났습니다. 재판부가 "심신미약 상태는 인정되나, 범행의 잔혹성과 피해의 심각성을 고려할 때 감경할 이유가 없다"며 법정형을 그대로 선고하는 사례가 생긴 것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한계는 명확합니다. 첫째, 주취감경은 성폭력 범죄 외에는 여전히 적용됩니다. 둘째, 심신미약 판정 자체가 객관적이지 않습니다. 정신감정은 의사의 주관적 판단이 개입될 수밖에 없고, 피고인이 증상을 과장하거나 꾸며낼 가능성도 있습니다. 셋째, 법이 개정되어도 양형 관행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비질란테가 묻는 근본적 질문: 정의란 무엇인가
드라마 비질란테의 진짜 힘은 단순히 "범죄자를 때려잡는다"는 사이다 전개에 있지 않습니다. 이 드라마는 관객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정의는 어떻게 실현되어야 하는가?"
김지용은 명확한 원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법이 제대로 처벌하지 않은 자만을 대상으로 삼는다." 그는 아직 재판을 받지 않은 범죄자는 건드리지 않습니다. 법의 판단을 기다립니다. 하지만 법이 솜방망이 처벌을 내리고, 범죄자가 반성 없이 출소해 다시 범죄를 저지르거나 피해자를 위협할 때, 그는 직접 응징에 나섭니다.
이는 명백히 불법입니다. 사적 제재는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입니다. 드라마 속에서 경찰대 교수이자 김지용을 의심하는 이준엽(권해효)은 이렇게 말합니다. "경찰은 보복을 해주는 집단이 아니다. 우리는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동시에 드라마는 묻습니다. 법이 피해자를 외면하고, 가해자에게만 관대할 때, 국민은 법을 신뢰할 수 있는가? 법정에서 가해자는 "깊이 반성한다"고 눈물을 흘리지만, 출소 후에는 여전히 범죄를 저지르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비질란테 현상의 실제 사례들
비질란테는 허구가 아닙니다. 실제로 한국 사회에서도 법이 처벌하지 못한 범죄자를 시민이 직접 응징하려는 사례들이 있었습니다.
가장 유명한 사례는 안두희 저격사건입니다. 1996년, 박기서는 백범 김구 선생을 암살한 안두희를 저격해 살해했습니다. 법정에서 박기서는 "역사적 정의를 실현했다"고 주장했지만, 살인죄로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받았습니다.
2020년에는 조두순 보복 살인 시도 사건이 있었습니다. 한 남성이 출소한 조두순을 망치로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입니다. 그는 "국민을 대신해 처벌하려 했다"고 진술했지만, 살인미수죄로 처벌받았습니다.
해외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습니다. 2024년 미국에서는 유나이티드헬스케어 CEO가 총격으로 살해됐는데, 범인은 보험회사의 부당한 의료비 거부로 고통받는 환자들을 대신해 정의를 실현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사례들은 모두 불법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사건들이 반복적으로 발생한다는 것은, 시민들이 법 시스템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법조계의 반응과 딜레마
비질란테 드라마 방영 이후, 법조계에서도 다양한 반응이 나왔습니다. 일부 법률가들은 "드라마가 사법 시스템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며 공감을 표했습니다. 한 현직 검사는 "수사하고 기소해도 솜방망이 처벌이 나올 때의 허탈함을 잘 표현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반면 비판적 의견도 많았습니다. "드라마가 사적 제재를 미화하고, 법치주의를 부정하는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우려였습니다. 한 변호사는 "김지용 같은 비질란테가 정말 등장한다면, 그것은 법 시스템의 실패이자 사회의 파국"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법률가들도 인정합니다. 현재의 양형 시스템이 국민의 법 감정과 괴리되어 있다는 점, 피해자 보호가 충분하지 않다는 점, 심신미약 감경이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점을 말입니다. 문제는 이를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입니다.
엄벌주의만이 답은 아닙니다. 형량을 무조건 높인다고 해서 범죄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며, 교화와 재활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피해자의 고통을 외면하고, 가해자의 권리만 보호하는 것도 정의가 아닙니다. 그 균형점을 찾는 것이 한국 사법 시스템의 과제입니다.
다크 히어로의 양면성: 정의인가, 또 다른 폭력인가
비질란테 드라마는 김지용을 영웅으로만 그리지 않습니다. 그의 행동이 가져오는 부작용도 냉정하게 보여줍니다. 김지용의 비질란테 활동이 언론에 알려지자, 모방범들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김지용처럼 명확한 원칙이 없이,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합니다.
죄 없는 시민이 짭질란테(가짜 비질란테)에게 살해당하는 사건도 발생합니다. 김지용은 이 소식을 듣고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자신의 신념을 우직하게 밀고 나갈 뿐입니다. 이는 비질란테의 근본적 문제를 보여줍니다. 사적 제재는 통제할 수 없고, 무고한 사람이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항상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드라마는 또한 김지용의 심리적 변화도 보여줍니다. 처음에는 명확한 원칙을 가지고 "법이 제대로 처벌하지 않은 자"만 응징하던 그가, 점차 범위를 넓혀갑니다. 법정에 세우는 것 자체가 어려운 거악들, 미성년자 범죄자들까지 직접 처벌하기 시작합니다. 복수와 정의의 경계가 흐려지는 것이죠.
경찰대 교수는 김지용이 비질란테임을 알면서도 내버려 둡니다. 자신도 흉악범들이 구역질 날 만큼 혐오스럽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김지용에게 소말리아 내전 지역 영상을 보여줍니다. 법이 무너진 곳에서 어떤 참상이 벌어지는지 깨닫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피해자 중심 사법 시스템으로의 전환 필요성
비질란테가 제기한 문제에 대한 해법은 무엇일까요? 단순히 형량을 높이는 엄벌주의는 답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피해자 중심의 사법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첫째, 피해자의 재판 참여권을 확대해야 합니다. 현재는 피해자가 재판 과정에서 의견을 진술할 기회가 제한적입니다. 피해자 진술권을 보장하고, 양형에 피해자의 의견이 실질적으로 반영되도록 해야 합니다.
둘째, 피해자 보호 시스템을 강화해야 합니다. 가해자가 출소 후 피해자를 다시 위협하는 일이 없도록, 접근 금지 명령을 강화하고 위반 시 엄벌에 처해야 합니다. 또한 피해자에 대한 경제적, 심리적 지원을 확대해야 합니다.
셋째, 심신미약 판정을 더 엄격하게 해야 합니다. 단순히 정신질환 병력이 있다고 해서 감경하는 것이 아니라, 범행 당시 실제로 판단 능력이 없었는지를 객관적으로 입증하도록 해야 합니다. 특히 술이나 약물을 고의로 섭취한 경우,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로 보아 감경하지 않아야 합니다.
넷째, 양형기준을 현실화해야 합니다. 법정 최고형과 실제 양형의 괴리를 줄이고, 국민의 법 감정을 반영한 양형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특히 재범의 경우 가중처벌을 강화해야 합니다.
결론: 비질란테가 필요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비질란테 드라마가 던진 질문은 명확합니다. "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시민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김지용 같은 다크 히어로가 등장하는 것은, 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다는 증거입니다.
드라마 속 김지용은 결국 자수를 선택합니다. 자신의 행동이 불법임을 알고 있었고, 끝까지 선을 지키려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남긴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법이 정의를 실현하지 못한다면, 시민은 법을 믿지 않을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비질란테가 아니라, 비질란테가 필요 없는 사회입니다. 피해자가 보호받고, 가해자가 합당한 처벌을 받으며, 국민이 법을 신뢰할 수 있는 사법 시스템 말입니다. 전과 18범 건달이 3년 6개월 형량을 받고 출소해 다시 폭력을 휘두르는 일이 없는 사회, 피해자 유족이 "법이 우리를 버렸다"고 절규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비질란테는 픽션입니다. 하지만 그 픽션이 제기하는 문제는 지금 이 순간에도 현실에서 계속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현재의 한국 사법 시스템이 피해자를 충분히 보호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리고 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우리는 어떻게 정의를 지켜야 할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