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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택시로 알아보는 사적 복수의 법적 문제 - 정당방위와 자력구제의 경계선

SBS 드라마 모범택시의 통쾌한 복수 대행은 정말 합법일까? 형법 제21조 정당방위, 제23조 자구행위를 중심으로 사적 제재의 법적 경계를 분석합니다. 60년간 14건만 인정된 정당방위, 대법원 판례가 없는 자구행위. 왜 법은 피해자의 복수를 허용하지 않을까요?


이제훈 주연의 SBS 드라마 '모범택시'는 2021년 첫 시즌 방영 이후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2025년 시즌 3까지 제작된 국민 드라마입니다. 법의 사각지대에서 고통받는 피해자들을 대신해 범죄자들에게 복수를 완성하는 무지개 운수의 이야기는 시청자들에게 사이다 같은 통쾌함을 선사하죠. 하지만 드라마를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한 가지 의문이 듭니다. "이런 복수 대행은 정말 합법일까?"

드라마 속 김도기(이제훈 분)와 무지개 운수 팀은 학교폭력 가해자를 감금하고, 불법 웹하드 운영자를 납치하며, 보이스피싱 조직을 폭행합니다. 비록 악당들을 응징한다는 명분이 있지만, 이들의 행위는 명백히 감금죄, 폭행죄, 상해죄에 해당합니다. 그렇다면 한국 법률상 이런 사적 복수는 어떻게 판단될까요? 정당방위나 자력구제로 정당화될 수 있을까요? 오늘은 형법 조항을 통해 모범택시의 복수 대행을 법적으로 분석해보겠습니다.

정당방위란 무엇인가 - 형법 제21조의 현실

형법 제21조 제1항은 "현재의 부당한 침해로부터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을 방위하기 위하여 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벌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 누군가 나를 공격할 때 나를 지키기 위해 반격하는 것은 죄가 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개인이 스스로를 방위하는 자기보호의 원리와, '법은 불법에 양보하지 않는다'는 법질서 수호의 원리가 입법 취지죠.

그러나 현실에서 정당방위가 인정되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형법이 제정된 1953년 이후 60여년 동안 대법원이 정당방위를 인정한 사례는 단 14건에 불과합니다. 1년에 1건도 인정되지 않는 경우가 많고, 4~5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희귀한 판례라는 것이죠. 법원이 이렇게 정당방위 인정에 인색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정당방위가 성립하려면 세 가지 요건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첫째, 현재의 부당한 침해가 있어야 합니다. '현재성'이란 침해가 지금 일어나고 있거나 임박했다는 의미로, 이미 끝난 침해에 대한 보복은 정당방위가 아닙니다. 둘째, 방위 의사가 있어야 합니다. 단순한 복수심이 아니라 자신이나 타인을 지키겠다는 의사가 있어야 하죠. 셋째, 상당한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방위행위가 침해에 비해 과도하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문제는 이 '상당한 이유'의 판단이 매우 엄격하다는 점입니다. 실제 판례를 보면, 야간에 도둑으로 오인받아 무차별 구타를 당하는 상황에서 손톱깎이칼을 휘둘러 다치게 하면 정당방위가 인정되지만, 주변에 있던 곡괭이나 식도를 사용하면 정당방위가 인정되지 않습니다. 심지어 집에 침입한 도둑을 빨래건조대로 때려 식물인간으로 만든 집주인에게도 정당방위가 인정되지 않고 실형이 선고된 사례가 있죠.

모범택시의 복수는 정당방위일까

모범택시의 복수 행위를 정당방위 관점에서 보면 어떨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모범택시의 행위는 정당방위로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현재성'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드라마를 보면 무지개 운수는 피해자의 의뢰를 받고 나서 범죄자를 찾아갑니다. 학교폭력 피해자가 의뢰하면 학교에 위장 침투해 가해자들을 응징하고, 보이스피싱 피해자가 의뢰하면 조직을 추적해 범죄자들을 제압합니다. 하지만 이는 이미 끝난 범죄에 대한 사후 보복입니다. 피해자가 학교폭력을 당하는 바로 그 순간, 보이스피싱에 당하는 바로 그 순간에 막아선 것이 아니라,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 계획적으로 복수한 것이죠.

정당방위의 '현재성'은 침해행위가 종료되기 전까지를 의미합니다. 일련의 연속되는 행위로 침해상황이 중단되지 않거나, 일시 중단되더라도 추가 침해가 곧바로 발생할 객관적 사유가 있으면 인정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범택시처럼 범죄가 완전히 끝난 후 며칠, 몇 주가 지나서 찾아가 응징하는 것은 현재성이 인정될 수 없습니다.

또한 '방위 의사'도 문제가 됩니다. 무지개 운수의 행위는 피해자를 지키기 위한 방어가 아니라, 범죄자에게 똑같은 고통을 주기 위한 응징입니다. 드라마 속 대사를 보면 "똑같이 한 번 느껴봐야 한다", "지옥을 보여주겠다"는 식의 복수심이 명확히 드러납니다. 방위의사보다 복수심이 앞서는 경우 정당방위가 인정되지 않습니다.

자력구제는 가능한가 - 형법 제23조 자구행위

그렇다면 '자력구제' 또는 '자구행위'는 어떨까요? 형법 제23조 제1항은 "법정절차에 의하여 청구권을 보전하기 불능한 경우에 그 청구권의 실행불능 또는 현저한 실행곤란을 피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자구행위는 법치주의 원칙의 예외입니다. 본래 법치주의 국가에서는 자력구제가 금지됩니다. 개인이 스스로 권리를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공권력을 통해 적법한 절차로 권리를 보호받아야 한다는 원칙이죠. 하지만 예외적으로 법정 절차로는 청구권을 보전할 수 없는 긴급한 상황에서만 자력구제가 허용됩니다.

예를 들어, 당신에게 10억을 빌려간 채무자가 공항에서 해외로 도망치려 한다고 가정해봅시다. 법정 절차를 거치면 채무자가 이미 출국해버려 돈을 받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때 채무자의 출국을 물리적으로 저지하는 행위는 자구행위로 정당화될 수 있습니다. 단,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보전행위'이지 '충족행위'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채무자의 출국을 막는 것은 허용되지만, 채무자의 재산을 직접 가져가는 것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형법 제23조는 한국 형법의 독창적인 조항입니다. 자구행위를 형법에 명문으로 규정한 외국의 입법례가 거의 없기 때문이죠. 하지만 더 흥미로운 사실은 대법원이 자구행위를 인정한 판례가 단 한 건도 없다는 것입니다. 고등법원이나 지방법원에서만 간혹 인정될 뿐, 대법원까지 올라간 사건에서는 단 한 번도 인정된 적이 없습니다. 사실상 사문화된 조항인 셈이죠.

모범택시는 자구행위로 정당화될 수 있나

모범택시의 행위를 자구행위로 볼 수 있을까요? 이 역시 불가능합니다. 자구행위가 성립하려면 세 가지 요건이 필요합니다.

첫째, 법정 절차로는 청구권을 보전할 수 없어야 합니다. 모범택시의 의뢰인들은 대부분 경찰에 신고하거나 법적 절차를 밟을 수 있는 상황입니다. 학교폭력은 학폭위에 신고할 수 있고, 보이스피싱은 경찰에 신고할 수 있으며, 성범죄는 검찰에 고소할 수 있습니다. 법정 절차가 느리거나 만족스럽지 않다는 것과, 법정 절차가 불가능하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입니다.

둘째, 청구권의 실행불능 또는 현저한 실행곤란을 피하기 위한 행위여야 합니다. 자구행위는 청구권을 '보전'하는 일시적 조치입니다. 하지만 모범택시의 행위는 보전이 아니라 응징입니다. 범죄자를 감금하고 폭행하는 것은 청구권 보전과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셋째, 상당한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자구행위 역시 사회통념상 용인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만 허용됩니다. 모범택시처럼 범죄자를 납치해 가상 감옥에 가두고, 똑같은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어떤 기준으로도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왜 법은 피해자의 복수를 허용하지 않는가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은 이런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법이 제대로 범죄자를 처벌하지 못하니까 피해자가 직접 나서는 거 아닌가? 왜 법은 피해자의 정당한 복수마저 막는 걸까?"

법이 사적 복수를 금지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첫째, 법치주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개인이 판사, 검사, 경찰을 대신해 직접 처벌을 집행하게 되면, 법질서 전체가 무너집니다. 모든 사람이 자기 기준으로 정의를 실현하려 들면, 사회는 약육강식의 정글로 변할 것입니다.

둘째, 과잉 처벌의 위험이 있습니다. 피해자는 당연히 범죄자에게 더 큰 처벌을 원할 것입니다. 하지만 범죄와 형벌은 균형을 이뤄야 합니다. 절도범에게 사형을 선고할 수 없듯이, 복수 역시 적절한 수위가 있어야 합니다. 객관적인 제3자인 법원이 판단해야 과도한 처벌을 막을 수 있습니다.

셋째, 오판의 가능성입니다. 모범택시에서는 모든 의뢰인이 진짜 피해자이고, 모든 범죄자가 진짜 악당입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무고, 오해, 과장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법원이 증거를 검토하고 양측 주장을 들어봐야 진실을 가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피해자는 어떻게 해야 하나

법이 사적 복수를 허용하지 않는다면, 피해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현실적인 구제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형사 고소입니다. 범죄 피해를 당했다면 경찰이나 검찰에 고소장을 제출해야 합니다. 형사 절차를 통해 범죄자를 처벌받게 할 수 있습니다. 비록 원하는 만큼의 처벌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것이 법치국가에서 정당한 절차입니다.

둘째, 민사 손해배상 청구입니다. 형사 처벌과 별개로 피해자는 민사소송을 통해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범죄로 인한 재산 피해, 정신적 고통 등에 대해 금전적 보상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셋째, 범죄피해자 지원 제도 활용입니다. 한국에는 범죄피해자 보호법에 따라 국가가 범죄 피해자를 지원하는 제도가 있습니다. 의료비, 생계비, 법률 지원 등을 받을 수 있으며, 범죄피해자지원센터를 통해 심리 상담도 가능합니다.

넷째, 법률구조공단 등을 통한 무료 법률 지원입니다. 경제적 여유가 없어 변호사를 선임하기 어려운 경우, 법률구조공단이나 대한변협의 무료 법률 상담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모범택시가 던지는 질문

모범택시는 드라마이기에 통쾌한 복수가 가능합니다. 시청자들이 사이다를 외치는 이유는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정의 실현을 대리만족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드라마를 보며 우리가 정말 고민해야 할 질문은 따로 있습니다.

왜 피해자들은 법보다 복수를 선택하고 싶어 할까? 현재 사법 시스템이 피해자를 충분히 보호하고 있는가? 형벌이 범죄자를 제대로 응징하고 있는가? 법의 사각지대를 어떻게 메울 것인가?

모범택시의 인기는 단순히 액션이 멋있어서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현실의 법이 피해자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정당방위는 60년간 14건만 인정되고, 자구행위는 대법원 판례가 단 한 건도 없습니다. 피해자가 스스로를 지키는 것조차 법은 허락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적 복수를 허용할 수는 없습니다. 대신 우리는 법 제도를 개선해야 합니다. 정당방위 인정 기준을 완화하고, 범죄 피해자 지원을 확대하며, 형사 절차를 신속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피해자가 법을 신뢰할 수 있어야, 모범택시 같은 복수 대행을 꿈꾸지 않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법의 사각지대에서 고통받는 피해자를 위해 우리 사회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모범택시는 판타지로 남아야 할까요, 아니면 법 제도 개선의 출발점이 되어야 할까요?